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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노트/도서리뷰(문학)

3.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 문상훈(빠더너스)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그렇게 많은 문상훈을 봤는데도 여전히 새로운 문상훈의 얼굴이 이 책에 있다.” (작가 이슬아) 133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빠더너스〉의 크리에이터 문상훈이 첫 산문집을 출간했다. 문쌤, 문이병, 문상 등 다양한 부캐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소식이 새삼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오랜 팬이라면, 혹은 매체를 통해 그의 편지글 한 문장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누구보다 기다려왔을 소식임이 분명하다. 문상훈을 대표하는 〈빠더너스〉 채널 소개란에는 “하이퍼 리얼리즘의 콩트와 코미디 영상을 만듭니다”라고 적혀있다. 뛰어난 캐릭터 분석과 시대의 흐름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담은 코미디로 웃음을 주는 것이 그의 본업인 것이다. 하지만 그는 대중을 상대로 말하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말’이 가장 어렵다.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오해할까 봐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한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이 책에서 고백한다. 자신의 말을 가장 오해한 사람은 문상훈, 자신이었다고. 이 책은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이라는 제목처럼 문상훈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자,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문상훈의 새로운 얼굴이다.
저자
문상훈
출판
위너스북
출판일
2024.01.05

 

 

일요일 아침, 눈 뜨자마자 집 앞 카페로 가서 커피 마시며 책 읽는 시간은 힐링이다. 
 

 
오늘 읽으려고 챙겨간 책은 12월 말에 예약해서 구매했지만 그대로 한쪽에 밀어뒀던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이다. 요즘 내 감성이 메말라 있는 탓에 잘 읽히지 않아서 미뤄두었던 책이었는데 오늘만큼은 주말의 여유를 부리며 느긋한 마음으로 문상훈 책에 빠져들었다. 
 

 
유튜브의 빠더너스 채널은 보지 않아서 이 작가가 그렇게나 유명한 유튜버라는 걸 몰랐다. 오히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엑스트라로 출연한 게 더 강렬히 기억에 남아있었다. 유튜브나 브라운관에서의 문상훈과 글쓴이 문상훈의 느낌은 완전 달랐다. 그냥 웃기는 유명인일줄 알았는데 글솜씨는 말할 것도 없고 깊은 내면이 느껴졌다. 얇은 책 한 권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누르고 눌러서 한 자 한 자 섬세하게 담아냈다. 그래서 급하게 읽기보다는 시간의 여유를 두고 천천히 곱씹으며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우선 책 앞쪽에 저자가 직접 찍은 감성적인 사진들을 보며 샌드위치를 곱씹었다0.0?!
 

 

책의 중간중간 저자의 손글씨가 있다. 모두인상 깊은 구절들이다. 

 

26p. 꽃말이 예쁘지 않다고 뽑아 댄 잡초들은 사실 내가 바라던 꽃과 열매들의 마중물이었어요. 그걸 너무 늦게 알았지만 오늘은 해가 뜨고 내일은 비가 올 것이고 계절은 언제나 돌아온다는 사실로 아쉬움을 훔쳐냅니다. 지고 있던 농약을 내려놓기로 합니다. 

- 항상 좋은 감정만 갖고 살 수는 없고 즐겁고 행복한 일기만 쓸 수는 없다. 때론 부끄럽거나 부정적인 감정이 일기도 하는 법! 나만이 나를 소중하게 다룰 수 있다. 부정적인 감정이 드는 순간에도 내 자신을 마주하며 어루만져 주자...열매를 맺기 위한 과정이다.

 

35p. 세상사람들이 좋아하는 말 중에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라는 것도 알겠고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는 말도 알겠는데, 아무도 보지 않은 것처럼 춤추라는 것은 나같은 사람에게는 너무 어럽다. 나는 누군가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해야지만 춤 비슷한 것이라도 나올 것 같기 때문이다. 

- 나 자신을 위한, 내 만족을 위한 일

 

56p. 어릴 때는 아직 간지러워서 못쓰고, 그 또래가 되면 괜히 싱거워서 안 쓰고, 시간이 지나면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못쓰는 단어, "청춘" / 혹시 지금 내 청춘이 벌써 정상을 지나 하산하는 길인가 하는 마음에 저녁내내 뒤숭숭하다. 커가는 길은 힘들고 지루했고 늙어가는 길은 우울해서 힘이 쭉쭉 빠진다. 청춘이 하산하는 길도 오르막처럼 땀이 났으면 좋겠다.

 

자신을 오래 들여다 볼 줄 아는 사람들은 천천히 늙는다. 내 잘못과 부족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사람들은 사과도 쉽게 한다. 나이드는 것과 실수가 줄어드는 것은 상관이 없는데 어른은 실수 안하는 줄 아는 사람들이 그 실수를 감추려고만 하니 도리어 실수도 더 많이 한다. 나는 매일 미숙해서 오늘도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의 소년으로 오래 남고 싶다. 

- 내리막길도 오르막길 오를 때처럼, 마음만은 청춘으로 살자. 자신이 저지른 실수는 사과하고 모르는 건 배우고 숫자에 불과한 나이로 거만하게 굴지 말 것. 

 

63p.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할 때 대부분의 이유는 나를 좋아해 준다는 것이다. 

- 맞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들에게 먼저 호감을 보여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또 귀신같이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을 눈치챈다. 내가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고 다가간 적이 언제였지? 주위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피드백보다 부정적인 피드백을 더 많이 내비친 것 같아 반성이 되었다. 

 

 

64p. 실망은 그 사람에 대한 업앤다운 게임에 불과하다. 나를 너무 좋게 안 보는 것은 나를 나쁘게만 보는 것만큼 안 좋다는 것을 몰랐다. 나를 한없이 좋게만 봐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망은 나라는 숫자를 맞추기 위해 업앤다운으로 영점을 향해가는 것 뿐이고 실망했을 때가 서로를 알아가기 가장 좋은 순간이다. 누군가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을 때 내가 먼저 해야하는 것은 기대에 못 미친 나도 나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잘 나온 사진만 내 얼굴이 아니듯 기대에 부응한 나만 내가 아니라는 것을 직시해야한다. 

- 실망했을 때가 서로를 알아가기 가장 좋은 순간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너에게 실망했어'라는 말을 청천벽력으로 듣는 저자를 넘어서 나는 그 말을 '관계의 끝'으로 듣기 때문이다.  내 내면은 하염없이 여리고 어리고 물러터졌다... 

 

80p. 공항 검색대의 짐처럼 내 감정들을 바리바리 다 꺼내 놓아야한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오해 없이 잘 설명하려면 내감정의 경위서를 먼저 작성하고 그 마음들을 공감받으려면 말이다. 

 

109p. 왜 사람들은 모든 분야에 별점을 매기려 들까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별점의 기준이 되니까 좋아하는 것을 좋아할 수 없게 됩니다. 

 

 118p. 자기혐오: 그래도 오늘 밤에는 미워하는 사람과 미움받는 사람이 둘 다 나인 것이 둘 중 하나인 것보다는 낫지 않냐고 중얼거리며 걸어 보려 합니다. 

 

128p. 짝사랑의 완성은 고백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 쯤은 알고 있다. 짝사랑이 완성된 순간이란 마음을 전달하는 순간이 아니라 내 안에서 하얗게 소실될 때가 아닐까 한다. 

- 짝사랑을 혼밥에 비유한 부분도 인상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