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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노트/도서리뷰(문학)

6. 스타벅스 일기 - 권남희

 
스타벅스 일기
무라카미 하루키·마스다 미리·오가와 이토 등의 번역으로 유명한 32년 차 ‘믿고 읽는 번역가’이자 ‘역자 후기의 장인’, 그리고 산문집 《혼자여서 좋은 직업》 등을 통해 ‘믿고 읽는 작가’로 사랑받고 있는 ‘한국의 마스다 미리’ 권남희. 그가 신간 《스타벅스 일기》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이 책은 작가가 딸을 독립시키고 인생 처음으로 ‘진짜 독립’을 시작한 뒤 찾았던 스타벅스에서의 소중하고 유쾌한 일상을 보여준다. ‘완벽하게 육아가 끝난 날’의 홀가분함도 잠시, 작가에게는 홀로 남은 집안에서 빈둥지증후군’으로 인해 ‘일할 의욕도, 식욕도, 살아갈 의미도 잃고 폐인처럼 우울하게 지내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어 노트북을 들고 집 근처 스타벅스를 찾아간다. ‘눈치 없이 젊은 사람들 사이에 껴서 일해도 되나?’ 바짝 쫄며 들어간 스타벅스. 내향인 중에서도 ‘대문자 I’로 불리는 극 내향형인 작가에게 그곳은 고작 1년에 한두 번 테이크아웃해본 게 전부였던 곳이다. 깔끔한 공간과 적당한 소음, 조밀하게 붙어 있는 테이블 사이에 앉아 글을 써보니, 집에서는 한 줄도 못 썼던 원고가 이상하게 술술 쓰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스타벅스는 가는 곳마다 왜 그렇게 사람이 많은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딸 정하가 편한 집 놔두고 ‘스벅(스타벅스의 줄임말)’에 가서 공부하겠다고 하면 그리도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그 순간 완벽하게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스타벅스는 매장 직원이나 주변 손님을 신경 쓰지 않아도 돼서 자유롭고, 오픈된 장소여서 혼자 있는 방종을 막아주어 공부나 작업이 능률적이었다. 나는 나무늘보보다 움직임이 적은 인간이었는데, 스타벅스에 다니는 덕분에 매일 최소한 왕복 2킬로미터 이상 걷게 됐다. 일도 하고 운동도 하고 빈둥지증후군도 낫고 일석삼조. 나의 스타벅스 일기는 이렇게 해서 시작됐다.”(7쪽) 작가는 공간이 주는 독특한 힐링에 주목하며 특별한 것 없는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자신만의 ‘스탁벅스 일기’를 완성했다. 그것은 브랜드의 유명세 때문도, 매장 인테리어 때문도, 독보적인 커피맛 때문도 아닌, 스벅을 찾아오는 다양한 연령대와 성별의 고객, 그리고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수많은 파트너(직원들) 덕에 가능했다. 작가는 날마다 그날 마실 음료를 정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 다양한 시즌 한정음료에 얽힌 에피소드를 풀어내기도 하고, 옆자리 손님들의 대화나 옷차림, 자신과 짧게 스친 인연들을 붙잡아 때론 가벼운 웃음으로, 때론 삶에 관한 묵직한 사유로 담아낸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을 지나며 창밖에 보이는 풍경과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변화를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이는 별의별 상처를 받고, 극복하며 어른이 된다. 지금 육아일기를 쓴다면 상처받지 않고 곱게 살기를 바라기보다, “어떤 상처도 이겨낼 수 있는 멘탈이 강한 아이로 자라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할 것 같다. 옆자리 어린 친구도 실연의 아픔 툴툴 털어내고 혼자로 단단한 삶을 즐기기를. 실연한 사람에게 똥차 가고 벤츠 온다고 위로하지만, 그야말로 위로일 뿐. 벤츠 기다리지 말고 네가 벤츠가 돼버려.”(167쪽)
저자
권남희
출판
한겨레출판사
출판일
2023.11.30

 

 

마스다 미리 등 다수의 일본 문학을 번역한 권남희 작가님의 에세이. 

스타벅스에서 번역 일을 하며, 그날의 음료와 일상에서 드는 생각들을 기록한 책이다.

 

챕터마다 호흡이 가볍고 문장도 간결해서 단번에 읽어버렸는데 마지막 장을 넘길 때에는 '아껴 읽을 걸'하는 아쉬움 마저 남았다. 저자는 20대의 딸을 둔 엄마이기도 한데 딸과 번역가 엄마의 에피소드를 볼 때면 우리 엄마 생각도 나고, 미래의 딸이 생기면 이런 모녀사이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귀여운 일러스트가 그려진 <스타벅스 일기>

 

얼마 전 타나카타츠야의 미타테 마인드 전시회를 보러 가서 <스시가 옷을 사러 갔어요>라는 동화책을 재미있게 봤는데 그 책도 이 권남희 작가님이 번역한 책이라고 한다.(이 에피소드도 재밌었지) 필력도 좋고 작가님의 생각도 재치 있어서 읽는 동안 힐링됐던 에세이. '출판번역가는 역시 글도 맛깔나게 쓰는구나' 생각하며 오늘 도서관에 가서 권남희 선생님의 다른 책 <혼자여서 좋은 직업>도 빌려왔다.

 

모든 사람이 행복한데 나만 외롭고 쓸쓸하다고 느꼈던 크리스마스나 봄.

지금은 잘 보내는 법을 체득했지만 어린 시절에는 나만 불행한 것 같아서 마음 속 울적함을 담아두고 있었는데 작가님도 지루함을 느꼈다고 하니 반가웠다.

 

89p. 세상은 온통 봄인데 나는 외톨이다(- 우연한 축복)   

내가 어릴 때마다 느껴온 감정을 이렇게 간단히 한 줄로 표현하다니

곧 온통 봄인 세상에서 외톨이인 분 많겠구나요, 봄은 오는 척하다 가버리니까요 무시하세요

 

 

63p. 상사가 그만두려는 사람을 붙잡는 경우, 98퍼센트 자기를 위해서지 상대방을 위해서는 아니다. 

한 번 그만두려고 마음먹었을 때 그만두는 게 정답이다. 욱해서 던지는 사표가 아니라 심사숙고한 것이라면 

 

스타벅스에서 번역 일하는 작가님 주변으로 여러 사람이 다녀가는데, 그 속에서의 작가님의 시선이나 가치관이 담겨있다. 어떻게 매일 일하러 카페에 가면서 일지를 쓰고 그걸 책으로 낼 생각을 했을까! <불편한 편의점>의 짧은 글 버전을 보는 느낌이다. <스타벅스 일기2>도 내주세요...  

   

 

74p. "한 번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상처에 생긴 딱지처럼 벗겨내고 싶어지더라"

오늘 스타벅스에서 번역한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에 나오는 문장이다. 아, 맞네. 학원이나 회사나 연애나 인간관계나, 한번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면 그만두어야 하는 건 '상처에 생긴 딱지'처럼 간질간질해져서 그렇구나 

 

 

170p. 몸이 불편한 아이가 있으면 가정에 그늘이 있을 거라는 편견이 깨졌다. 무척 밝고 환한 가족이었다. 엄마와 아빠가 아이를 사랑하는 모습만 보이고 아무런 그늘도 보이지 않았다. 장애가 있건 없건 내 아이는 사랑스럽기만 한데 남들이 편견을 갖는다. 그러고 보니 우리 강아지 나무의 두 눈이 새하얘져서 지나가는 사람마다 징그러워하거나 무서워할 때도 정하와 나는  귀엽다며 물고 빨았다. 가족의 마음은 그런 것이다. 

 

252p. 서머 캐리백 사태는 이런 물질적 보상과 대표이사가 사임하는 등 대대적인 사과로 마무리됐다. 일련의 과정을 쭉 지켜보며 생각했다. 사과란 "요만큼하면 되겠지"가 아니라 상대방이 "뭘 그렇게까지"라고 말할 정도로 해야 제대로 하는 거구나. 그러려면 역시 돈이 많이 드는구나.

 

274p. 얼마 전에 20년 동안 밀봉해둔 상자를 열었더니 신혼 때 쓴 일기장과 결혼 전에 주고받은 편지들이 잔뜩 나왔다. 연애편지는 오글거려서 읽을 수가 없었고, 일기장에는 타국 생활을 우울해하는 글뿐이다. 맨날 야근하는 남편만 보고 살았으니 그랬을 만도 하지. 스물아홉. 지금 정하 나이 때다. 정하는 아직도 이렇게 아기처럼 우쭈쭈 사랑받고 있는데, 스물아홉, 서른 살 때의 내가 너무 안쓰러워서 며칠 울었다. 결혼이란 걸 깊이 생각하지 않고 선택한 대가다. 그래서 그 선택을 후회하는가 하면 그렇진 않다. 정하를 만났으니까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브러쉬업 라이프> 일드도 보고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읽어야지.